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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 인사말 | 문중 소개 > 회장 인사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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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휘 기픈 남간 바라매 아니 뮐 쌔. 곶 됴코 여름 하나니 새미 기픈 므른 가마래 아니 그츨 쌔, 내히 이러 바라래 가나니.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기에, 그 꽃이 아름답고 열매 성하도다. 샘이 깊은 물은 가믐에도 마르지 않기에, 흘러서 내가 되어 바다에 이르는도다) 용비어천가 2장의 아름답고 뜻 깊은 문장입니다. 선조를 잊지 않고 그 덕을 기리면서 화합하는 씨족은 번창하기 마련이고, 근본도 내버리고 되는 대로 이리저리 내달리는 사람은 결국 흔적도 없이 사라지기 마련입니다. 독일의 법학자 기에르케(Otto V.Gierke)는 사람은 다른 사람과의 결합으로 사람답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사람과의 결합은 부부나 친구 · 각종 동반자 등 동시대 사람과의 협력에서도 중요하지만, 세상을 떠난 선조와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후손과의 결합은 인간이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더욱 값지고 중대한 일입니다. 우리 창원구씨는 세종실록 지리지에 세거지가 뚜렷이 기재되어 있고 여러 역사서에 행적이 기록되어 있는 유서깊은 씨족으로서, 신라말 고려초에는 여러 어진 재상을 배출하였고, 시조 성길(成吉)공이 혜종2년(945년) 서경에서 공을 세워 의창군(義昌君)으로 봉해지셨기에 이후 의창의 다른 이름 창원을 본관으로 하고 있습니다. 조선조에서는 중시조 종길(宗吉)공이 세종을 모셨고,부사공(府使公) 복한(復漢)은 강계군을 개척하셨습니다. 근현대에도 초대 한국은행 총재 용서(鎔書), 국회의원 용현(龍鉉) · 종태(鍾泰) · 자근(滋根), 서울대 교수 영록(永祿)박사, 옥회(玉會)제독 등 여러 인재를 배출하고 있는 자랑스러운 씨족입니다. 우리 창원구씨는 임진왜란 때 나라에 헌신하여 선무원종공신록권에 일등공신 훈련원정(訓練院正) 응삼(應參), 판관(判官) 지(之)를 비롯하여 수십 명의 선조들이 공신으로 등재되는 등 큰 활약을 하기도 하였는데, 1791년 정조(正祖)가 성을 구(仇)에서 구(具)로 바꾸게 한 후 많은 일족이 능성구씨로 이탈하는 혼란이 생겨 가세가 기울었습니다. 초대 도유사 재항(在航) · 태환(泰煥) 등 애족 선조들이 일제(日帝)의 어려운 상황에도 불구하시고 전국 각지로 흩어진 일족을 일일이 찾는 7년간의 각고의 노력으로 1930년 갑자보(甲子譜)를 만드셨고, 6·25 후에는 재항(在航) · 정훈(玎熏)님이 중심이 되어 1955년 을미보(乙未譜)를 만들어 전란으로 헝클어진 종사를 정비하셨습니다. 1980년대에 이르러 영학(永學) 대종회장님이 중심이 되어 일가찾기 운동을 벌여, 1997년 이천문중을 회복하였고 대구 지역 이탈문중이 간행한 능성구씨 족보의 발매를 정지시키기도 하였으며, 2001년에는 그 결과를 반영하여 신사보(辛巳譜)를 간행하였는데 그 때 환본하지 아니한 많은 이탈문중의 가(假) 족보도 작성하였고, 능성은 2002년 간행한 임오보(壬午譜)에서 대구지역 등 다수 문중을 능성족보에서 삭제하였습니다. 2018년부터는 재운(在雲) · 영희(永熙) 대종회장이 인터넷족보 간행을 추진해 왔는데 이제 그 결실을 보게 되었습니다. 젊은 종원들이 세계 각지에서 컴퓨터나 모바일로 족보를 열람하고 종사에 참여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저는 1994년부터 2001년까지 대종회장 직을 수행하였는데, 이제 다시 임무를 맡게 되었습니다. 전에 없던 전염병 등으로 침체된 제반 종사 복원과, 차세대 종중지도자 양성, 시조공 산소 회복과 능성구씨와의 관계 정리 그리고 무엇보다 홈페이지를 통한 종중운영 활성화를 주요 목표로 하여 노력하겠습니다. 종원 여러분 모쪼록 건강하시고,가내 다복하시기를 축원드리면서 홈페이지 재개설 인사에 갈음 합니다. 2024년 11월 3일 대종회장 상진(相鎭 20世孫)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