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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1-12-14 04:13
팔만대장경과 도공 선생님 그리고 나
 글쓴이 : 9전10승
조회 : 361  
이 얘기 중에는 작게는 내 인생을 바꾸어 놓은 얘기가 있고 크게는  아직도 세상에 널리 퍼지지 않은 다소 말하기 꺼려지는 비밀스런 얘기가 섞여있다. 

1954년 그러니까 내가 경남중학교 2학년 때의 일이다.
당시는 6.25 전쟁이 휴전된 지 채 1년도 되지 않았을 때여서 토성동의 이 층 목조 건물은 아직도 육군병원으로 쓰고 있었다.  물론 경남 고등학교는 일찌감치 지금의 산자락으로 이사를 해 자리를 잡았을 때였고 오로지 경남중학교 만이 그대로 남아 북쪽의 큰 운동장을 차지해 쓰고 있었다. 

교실은 마치 난민촌처럼 판자를 붙여 지은 건물들이 즐비하게 열을 지어있었지만 그래도 간이 야구장 정도는 유지될 수 있는 공간이 있어 체육 시간에는 나름대로 활동을 할 수가 있었다.

3월 중순이 되자 2학년을 대상으로 야구선수 후보를 뽑는 각반 대항전이 벌어졌다. 물론 그 이전 특별 활동이라는 것이 있어 학년에 구애 없이 많은 인원이 야구부에 들어가 있긴 했으나 정식후보로 우선 뽑히는 것은 크게 영광을 차지하는 것처럼 여겨졌다. 결국 2학년에서는 네명이 뽑혔는데 나도 그중의 한 명이 되어 무척 기뻤다.   
그리고 4월 초에는 바로 구포로 2주일간의 1차 합숙 훈련을 떠나게 되었 는데 당시의 사회상이 그러했는지라 이에 대한 비용의 일부는 각자가 쌀 두 되씩을 가져가는 것이었다.

우여곡절 합숙을 마치고 학교로 돌아와 보니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이미 돈을 주고 사 놓았던 도공 칼들이 이채로웠다. 사실은 2학년이 된 후 구입은 해 놓았으나 실제 제대로 써보지도 못하고 합숙을 떠났던 데다 처음 맞는 과목이라 자연히 호기심이 생겼던 것이 당연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별로 크지도 않은 목판 위에다 도안을 그리고는 각기 용도가 다른 네 개의 칼을 쓰임새에 따라 쥐고 작업을 했다.
아~ 뿔사 이것이 나의 운명이었던가? 왼손으로는 목판을 잡고 오른손으로는 힘을 주어 가장 날카로운 칼로 조각을 밀었는데 그만 그 날카로운 칼이 내 왼손중지의 아래 인대를 깊이 지나치고 말았던 것이다.
   
이로부터 야구선수가 되겠다던 나의 꿈은 이미 멀어져 버렸고 또 도공 시간도 전처럼 흥미를 가질 수 있는 입장은 아니게 되었다. 

여름방학을 마치고 처음 갖는 도공 시간이었다.
그날따라 수업을 시작하는 이근수 선생님의 분위기는 좀 다른 것 같았다.
평소 말씀을 많이 하지 않으시는 선생님께서 그 첫 마디가 내가 여름 방학 동안 가 있었던 곳이 바로 합천 해인사였다는 말씀이셨다.
                 
이어서 전쟁 중에 그러한 일이 벌어졌는지는 몰라도 팔만대장경 중 목판  네 장이 분실되어 그것을 다시 만드는 작업에 당국으로부터 호출을 받아 갔다 며칠 전 겨우 일을 마치고 돌아온 것이라 하셨다.

교실은 평소와는 달리 더욱 조용해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선생님께서는 6.25 당시 해인사를 인민군의 지역 사령부로 썼다는 것과 그들을 퇴각시킨 후 국군 역시 지역 사령부로 썼다는 것을 전재하시면서 아군이나 적군이나 간에 이 사람들이 팔만대장경의 탁본들을 모두 대변 후 휴지로 사용을 해 해인사를 둘러싼 사방이 그 종이들이 흩어져 바람에 마구 날라다니는가 하면 그 많은 나무가지에도 종이들이 걸려있어 참으로 비통하게 느껴졌었다는 말씀을 하셨다.

 해인사에는 작고 초라한 비석이 하나 서 있다. 그것은 6.25 전쟁 당시 부터 인구에 회자 되던 해인사의 폭격에 관한 얘기를 토대로 해인사에서 세운 공군에 대한 감사 비석이다.

항간에는 해인사의 폭격을 거부한 사람이 장지량 장군이라는 설이 파다했지만 결국은 1951년 8월 당시 편대장을 했던 김영환 대령(후일 장군. 비행기 추락사)이 주인공이었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기도 했다.
 
얘긴즉슨 김영환 대령이 가야산 폭격의 명을 받고 출격을 한 결과 막상 그곳이 바로 해인사였기 때문에 상부의 명령을 무시한 채 보급로만 폭격을 하고 도로 기지로 귀환을 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본부에서 문책을 하려 했으나 그 내용을 들었던 상관들은 물론, 미 고문단까지 모두가 이해를 했다는 것이다.   

알다시피 팔만대장경은 일본인들이 돌아가면서 우리 당국에 인계한 경판의 수가 총 81.258개였다고 한다. 우리 정부는 경황이 없었던지 그 숫자를 자세히 세어보지도 않고 인수를 했다고 하며 이후 2.000년경 10년간에 걸쳐 다시 관계 당국과 해인사 측이 함께 확인을 해 본 결과 94개가 더 많은 총 81.352개로 판명이 났다고 한다.
                 
약간 복잡한 것은 본판 이외 18개를 더한 보각판이라는 것이 있는 데다 이를 또 1937년에 복제한 18개의 복제판이 더해져 있다고 하니 내가  다음에 이어나갈 이야기에도 약간은 어려움이 따를 것 같다.

선생님께서는 이유야 어떻든 간에 6.25를 겪으면서 경판 중 4장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지금 생각하니 그것이 본판인지 보각판인지 복제판인지 아니면 혼합한 모두의 숫자인지는 몰라도 아무튼 세 사람의 장인이 불려 가 경판을 다시 만들었다는 말씀이셨고 또 그 경판의 목제는 3~4년 간을 해변의 어떤 곳에다 집어넣어 썩힌 후에야 비로소 조각을 할 수 있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리고 가장 놀라셨다는 말씀은 목각을 하는 솜씨는 사람마다 꼭 같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팔만대장경의 경판은 그 어떤 것을 뽑아 보아도 글자를 새긴 그 목각의 솜씨는 둘도 아니고 한 사람이 새긴 솜씨로 보인다는 것이 불가사이한 것이라 하셨다.
없어진 4장의 경판은 우리의 안타까움을 더하지만 8만 장이 넘는 경판인 데도 마치 한 사람의 솜씨처럼 보이는 것은 실로 영원히 한국인들의 자랑이 아닐 수 없다. 

학식이 매우 높은 스님에게 누가 질문을 했다. 스님! 그 많은 팔만대장경에는 무엇을 써 놓았습니까? 
스님이 답하기를  간단히 얘기를 하자면 “사랑”을 써 놓은 것이라 할 수가 있지요. 라고 답을 하셨다.
 
그렇다 물론 사랑에는 안중근 의사처럼 민족과 나라에 대한 사랑도 있을 것이고 부모의 자식에 대한 사랑도 또 춘향이와 이도령 처럼 남녀 간의 애틋한 사랑도 있을 것이다.
나는 불자가 아니지마는 팔만대장경에서의 사랑은 “어떠한 경우든 서로 양보하고 배려하는 바로 그러한 사랑을 얘기하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 본다. 

                                  2021.03      운몽/구문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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